레이 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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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이 세포는 뉴질랜드 출신의 격투가로, 복싱과 킥복싱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부메랑 훅을 특기로 삼았다. K-1, 종합격투기, 프로 복싱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95년 WMTF 세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시작으로 여러 타이틀을 획득했다. K-1 월드 그랑프리 2000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18년에 은퇴했다. 현재는 프로페셔널 파이터스 리그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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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경력
레이 세포는 뉴질랜드 출신의 격투기 선수이다. 복싱과 킥복싱을 기반으로 활동했으며, 슈거 레이 레너드의 스텝을 따라해 "슈거풋(Sugarfoot)"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기는 부메랑 훅이며, 2018년에 은퇴했다.[6] 헤비급에서는 작은 편(180~183cm)이지만 단단한 체격을 지녔다. 2001년 마크 헌트와 가드 없이 난타전을 벌인 경기로 유명하다.
"남태평양의 흑표범"이라는 별명 외에도 슈거 레이 레너드를 동경하여 "Sugarfoot"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입장 시 음악에 맞춰 관중을 열광시키고, 경기 중에는 미소를 지으며 부메랑 훅을 활용한 난타전을 펼치는 등 관중을 중시하는 파이터였다.
2012년에는 종합격투기 단체 월드 시리즈 오브 파이팅(PFL)을 설립하여 프로모터로도 활동했다.
2. 1. 초기 생애
뉴질랜드에서 사모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쿵후를 배웠고, 윙춘을 수련하기도 했다. 이후 복싱을 시작하여 18세 무렵에는 이미 프로 복서로 활동했다. 그의 별명은 "슈거풋(Sugarfoot)"인데, 이는 슈거 레이 레너드의 스텝을 따라한 데서 유래했다.2. 2. 격투기 선수 경력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레이 세포는 복싱과 킥복싱을 기반으로 활동한 격투기 선수이다. 슈거 레이 레너드의 스텝을 따라 해 "슈거풋(Sugarfoot)"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특기는 부메랑 훅이다. 2018년에 공식 은퇴했다.[6]젊은 시절 윙춘을 수련했고, 무에타이를 거쳐 발모럴 리 가 체육관에서 훈련했다. 아마추어와 오세아니아 킥복싱 리그에서 무패 기록을 세웠으며, 제이슨 서티 등과 함께 훈련했다. 1996년 안드레 마나아르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주목받았고, 데이비드 투아의 스파링 파트너로도 활동했다.
K-1 데뷔전은 에르네스토 후스트와의 경기였으며, 패배했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세 번째 K-1 경기에서 제롬 르 밴너를 1라운드 KO로 승리하며 명성을 얻었다. K-1 초기에는 기복이 있었으나, 2000년 무사시와 시릴 아비디를 꺾고 WGP 결승에 진출했지만,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패했다. 2002년에는 피터 아츠를 꺾었으나, 준결승에서 다시 후스트에게 패했다.
2007년, 세미 쉴트에게 도전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여러 경기를 치렀으며, 최홍만, 니시지마 요스케, 이오누트 이프티모아이를 상대로 승리했다. 2010년에는 타이론 스퐁과의 K-1 월드 그랑프리 2010 서울 16강전 경기에 출전했으나 판정패했다. 마크 헌트와의 경기에서 가드 없이 난타전을 벌인 경기는 K-1 역사상 명경기로 꼽힌다.
K-1과의 결별은 파이트 머니 미지급 문제 때문이었다. 세포는 K-1 측에 700000USD 이상의 미지급금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K-1 대표는 이를 부인했다. 이로 인해 세포는 K-1과 결별하게 되었다.[20][21][22]
K-1 주요 경기 일지
2. 3. 은퇴 이후
2013년 6월 12일, 세포는 복귀를 선언했다.[7] WSOF 3에서 데이브 허카바와 대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8] 2013년 8월 10일 월드 시리즈 오브 파이팅 4에서 허카바와 맞붙어, 2라운드 TKO로 패했다.[9] 2015년 4월 인터뷰에서 세포는 "사실 올해가 제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약속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허카바에게 패한 후 다시는 싸우지 않았으며,[9] 2018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1]세포는 현재 MMA 단체 프로페셔널 파이터스 리그의 회장이다.[5] 그는 이 단체가 월드 시리즈 오브 파이팅(World Series of Fighting)으로 알려졌을 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세포는 이 단체가 NBC 스포츠와 계약을 맺어 8~10개의 이벤트를 방송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 4. 기타 활동
헤비급에서는 작은 편(180~183cm)이지만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2001년 후쿠오카GP에서 마크 헌트와 가드 없이 주먹을 주고받는 대결을 한 적이 있다.[5]"'''남태평양의 흑표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또한 슈거 레이 레너드를 동경하여 해외에서는 "'''Sugarfoot'''(슈거풋)"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입장 시에는 음악 리듬에 맞춰 관중을 열광시키며 입장하고, 시합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의 기술인 '''부메랑 후크'''를 무기로 가드 없이 난타전을 펼치는 등, 관중을 열광시키는 경기 방식을 중시하는 파이터였다. 특히 마크 헌트와의 경기에서 두 선수 모두 가드 없이 난타전을 벌였던 경기는 유명하다.
2012년에는 자신이 사장을 맡은 종합격투기 단체 월드 시리즈 오브 파이팅(PFL)을 미국에서 설립하여 프로모터로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MMA 단체 프로페셔널 파이터스 리그의 회장이다.[5] 그는 이 단체가 월드 시리즈 오브 파이팅(World Series of Fighting)으로 알려졌을 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단체가 NBC 스포츠와 계약을 맺어 8~10개의 이벤트를 방송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오랫동안 K-1에서 함께 싸워 온 라이벌들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 자택에는 제롬 르 밴나, 피터 아츠, 어네스트 후스트, 레미 본야스키, 앤디 훅 등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스티븐 시걸이나 재키 찬 등의 액션 스타의 팬이기도 하며, 장래에는 영화 배우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2004년 12월에 공개된 일본 영화 「고질라 FINAL WARS」로 스크린 데뷔했다.
2009년부터는 HDNet에서 방송되는 K-1 해외 중계의 TV 해설자를 맡는 일도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싸움에 몰두했고, 프로 파이터가 된 후에도 혈기 넘치는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마빈 이스트먼 전에서는 1라운드 KO승을 거두었지만, 레퍼리 스톱의 속도에 불만을 품은 이스트먼이 시합 후 링 위에서 악수를 청하러 온 세포를 도발하자, 격분한 세포가 그 자리에서 주먹을 날리는 대난투극으로 발전했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남해의 흑표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세포 본인은 2011년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3. 격투 스타일
"'''남태평양의 흑표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슈거 레이 레너드를 동경했던 영향으로 해외에서는 "'''Sugarfoot'''(슈거풋)"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1]
경기 입장 시에는 음악 리듬에 맞춰 관중을 열광시키며 입장하고, 시합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의 기술인 '''부메랑 후크'''를 무기로 가드 없이 난타전을 펼치는 등, 관중을 열광시키는 경기 방식을 중시하는 파이터였다.[1] 특히 마크 헌트와의 경기에서 두 선수 모두 가드 없이 난타전을 벌였던 경기는 유명하다.[1]
부메랑 후크는 사각에서 날아오는 훅으로, 마무리 일격으로 사용된다.[1] 특히 카운터 상황에서 잘 들어간다.[1] "부메랑 후크"라는 별명은 세포의 강력한 후크를 본 격투기 통신 기자가 만화 링에 걸다의 주인공 고령룡아의 필살기인 부메랑 후크와 겹쳐 기사를 쓴 이후로 세포의 필살기로 자리 잡았다.[1]
상대방이 연타 혹은 날카로운 공격을 하면 "후우!!" 하고 소리를 내며 아주 기뻐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는 "더 쳐봐" 라는 듯이 도발한다.[1] 여유가 있을 때 혹은 궁지에 몰렸을 때, 이 두 경우 중 하나일 때 노가드 전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노가드 전법은 1998년 프란시스코 필리오 전에서 처음 선보였다).[1]
4. 전적
레이 세포는 종합격투기, 킥복싱, 복싱에서 활동한 선수이다. 그의 전적은 다음과 같다.
종합격투기와 킥복싱의 세부 전적은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